1941년 6월 22일, 독일과 소련의 독소전쟁이 일어납니다.
히틀러는 소련을 썩어빠진 나라라고 지칭하며 순식간에 전쟁에서 이길듯이 말했습니다.
석 달 동안은 그의 이야기가 맞아가는 듯했습니다. 놀라운 연승이 계속되고, 독일의 선전 매체가 대대적으로 전과를 선전하면서 사병들도 소련군을 낮추어 보는 상황이었죠.
그러나 독일은 소련과 전쟁을 위한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놀랍게도 불과 5달이 지나고 동계 피복이 없어 병사들이 곤혹을 치렀을 정도로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농민군 수준이었던 제1차 대전 당시의 러시아군을 기억하던 많은 이들은 소련군의 장비가 전근대적인 것이라 생각했지만 소련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죠.
독일군을 충격에 빠뜨린 T-34 전차와 전쟁에서 소련제 무기는 독일이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모든 것이 얼어붙는 러시아의 혹한에 더 큰 위력을 발휘했고, 최전방의 독일 병사들은 소련제 무기를 노획하여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권총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P38의 공급이 부족해서 퇴출이 예정된 P08을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독일군에게 소련의 TT 권총은 꽤 괜찮은 성능이었죠.
TT권총은 제2차 대전 당시에 사용된 권총들 중에서 P38과 더불어 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최신 권총이었죠.
TT 도입 이전까지 사용하던 나강 M1895 리볼버는 히틀러가 소련을 얕잡아 보도록 만들었을 만큼 구식이었습니다.
[나강 M1895 ]
제1차 대전을 거치면서 트렌드가 자동권총으로 바뀌었고, 1920년대 후반 들어 소련은 이를 대체할 새로운 군용권총 개발에 나섰습니다.
20세기 초부터 이미 자동권총을 대량 사용하고 있던 서구의 상황에 비교하면소련의 시도는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죠.
그렇기때문에 개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당시 유명했던 자동권총을 들여와 분석하고 참고합니다.
[미군의 콜트 M1911 ]
툴라 조병창의 수석 엔지니어인 토카레프는 지금도 세계 유수의 총기 제작사들인 미국 콜트 사의 M1911 권총과 벨기에 FN사의 M1903 권총을 벤치마킹하여 시제품을 내놓는데 성공하죠. 겉모습은 FN M1903과 유사하고, 쇼트리코일 방식을 채용했는데 내부적으로는 콜트 M1911에 가까웠습니다. 2가지 권총의 장점만 최대 모방한 형태였습니다.
[페도르 토카레프]
또한 새로운 권총에 걸맞은 탄환의 제작에도 나서 마우저(Mauser) C96 권총에 사용된 이른바 마우저 탄을 참고했습니다.
7.62×25mm 토카레프 탄을 개발했는데, 따발총으로 알려진 PPSh-41 기관단총의 탄환으로 사용되기도 했어요.
이렇게 개발한 새로운 권총실험에 성공한 당국은 성능에 만족해 이를 제식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툴라와 토카레프 앞자리를 따와서 'TT-30 권총'이라 이름을 붙였죠.
[ TT-30 권총 ]
대량생산을 위해 적합하게 개량을 했고 이것 'TT-33 권총’ 입니다. 1933년에 일어난 일이고, 대부분의 TT는 이 모델입니다. 놀라운사실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즉시 사격이 가능하도록 한다면서 당연히 있어야 할 안전장치를 없애버렸습니다. 사실 이는 그럴듯한 명분이었을 뿐이고 엄밀히 말해 구조를 단순화해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였죠.
이상 독소전쟁과 권총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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