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 파월장병 제2묘역에는 채명신 장군의 묘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 6.25전쟁, 베트남전쟁의 한국 영웅 이었고, 살았을때 유언대로 장군 묘역이 아닌 죽음의 사선을 함께 했던 병사들과 묻히기를 희망했다고 해요.

 

채명신 장군은 1926년 황해도 출생입니다.

항일운동가인 아버지와 크리스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평범한 목사의 꿈을 키우던 청년이었죠.

그러나 6.25전쟁이 발생하고 남쪽에 있는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군인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군인들이 발령을 꺼려했던 제주도 9연대에 배치됩니다.

그는 군 통솔 철학인 '골육지정의 리더십'을 터득하는데, 그로인해 그는 형제와 같은 부하들에 의해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됩니다

이후 송악산 전투, 남파 게릴라들을 토벌하려고 태백산에 투입되어 군인으로서 성장합니다.

 

채명신 장군의 활약은 6.25전쟁 초기 북한군 후방에 침투하여 게릴라전을 지휘했던 백골병단에 있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당시에는 제대로 훈련받은 병력도 부족했고, 부대 지휘관 역시 경험이 부족해서 일반적인 작전도 성공하기 힘들었죠.

 

 

하지만 북한군으로 위장한 백골병단은 북한군의 점령지로 침투해서 혁혁한 전과를 세우게 됩니다.

지금도 채명신 장군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로 소개되는 인민군 63여단을 완전히 궤멸(당시 적 후방을 책임 지던 부대), 

대남 유격부대의 지휘관인 김원팔 인민군 중장을 생포해 사살하는 등 훌륭한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베트남 전쟁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의 월남전 파병 결정이 됩니다.

그러나 채명신 장군은 개인적으로는 월남전 참전이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하며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가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파병을 결정하게 되고, 6.25 전쟁에서의 경험을 활용해서 정립한 '중대전술기지'라는 개념을 이용해 '두코 전투'와 '짜빈동 전투’에서 모두를 놀라게 할만한 전과를 올리게 되죠.

 

 

[중대전술기지]

적의 폭격 및 침입에 대비해 2~3명이 들어갈 수 있는 원형 구조로 호를 파놓고 거미줄처럼 연결합니다. 

밖으로는 철조망, 크레모아, 지뢰 등을 설치합니다. 그리고 안으로는 박격포 진지, 헬기장 등을 설치해서 완전 요새를 구축하고, 1개 중대 병력으로 대대 규모의 병력을 격퇴하는 전술기지입니다.

 

채명신 장군의 맹호소속 9중대는 '두코 전투'에서 6배나 많은 북베트남군 2개 대대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죠.

이 전투로 인해서 그의 전술 개념은 전투에서 많은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그로인해 미군은 한국군에 독자적인 작전권을 넘겨주게 되구요.

 

그 당시 베트남에서는 채명신 장군의 '양민과 베트콩 분리 정책’,'중대기지 전술'을 미군이 사용했다면,

전쟁이 6개월 만에 끝났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민간인 보호]

채명신 장군은 전투에서 승리도 중요했지만 전쟁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장병들과 함께 도로 보수, 구호식품 전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고, 그의 이런 노력은 주민들의 마음을 열고 자연스럽게 베트콩과 주민이 분리되는 상황을 만듭니다. 이로 인해 보다 수월하게 광활한 지역을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파월장병이 묻혀있는 묘역에 묻어달라]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에는 "이제는 떠나도 여한이 없다. 

그러나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조국 수호를 위해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고 먼저 가신 전우들의 영령들 생각이 항상 마음에 남는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전역 후에도 기업으로부터 고액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국가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등 대한민국 군인의 품위를 지켰고, 평소에 미국의 1,2차대전에 참전했던 장군이 국립묘원에 병사들과 함께 안장되어 있다는 말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에서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있는 묘역에 묻어달라" 유언을 남깁니다. 

2013년 11월 25일 8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고, 현충원 사병묘역에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병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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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은 해상 전투를 목적으로 하고 크기와 임무에 따라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투함, 특수함, 보조함)

해군의 핵심 병기이며 해상에서 군함의 역할은 공군력이 발달한 현대전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오늘은 1척만 있어도 국가의 해군력이 올라갈 수 있는 거대한 크기의 군함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프랑스 샤를르드 골 급 항공모함 - 기준 배수량 38,000톤/ 만재 배수량 40,600톤 / 길이 261.5m]

항공모함 중 핵공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바로 샤를르 드 골 항공모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가 항공모함을 보유하기까지는 큰 시련들이 많았는데요.

예산 부족으로 계획보다 5년 늦게 취역했고, 건조되기까지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한때 원자로에 문제가 발생해 배의 중심부를 다시 해체하고 재 건조했던 일도 있습니다.

유독가스 누출사고, 거의 완성단계에서 활주로가 짧아서 다시 연장 공사를 했던 일 등등.

규모와 역할 만큼이나 건조 되기까지 어려움들이 있었죠.

 

주요 무장으로는 함포 8문, 미스트랄 대공미사일 6연장 발사기 2기, Aster-15 대공미사일 수직발사관 32셀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함재기로는 라팔M, 쉬페르 에탕다르, E-2c 호크아이 조기경보기, AS 565 Panther 헬기, NH90헬기, ASS365 Dauphin 헬기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신속한 작전 수행이 가능하고, 총 탑승인원은 1950여 명으로 특수부대 800여 명과 탄약 500여 톤과 함께 작전 수행에 참여합니다. 

 

 

[미국 와스프급 상륙함- 기준 배수량 28,232톤/ 만재 배수량 41,335톤 / 길이 257m]

와스프급 상륙함은 미 해군이 현재 8척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길이와 규모로 인해 간혹 항공모함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크기가 엄청납니다.

 

와스프급 상륙함은 탑재하는 장비가 임무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통상임무 시에는 Av-8B 해리어 6기, UH-1N휴이 3기, CH-53 시 스탤리온 3기, CH-46 시나이트 12기, AH-1W 슈퍼코브라 4기 탑재 후 임무를 수행합니다.

 

해역통제 시에는 AV-8B 해리어 20기, SH-60F/HH-60H 대잠 헬기 6기를 탑재하여 분류는 상륙함입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항공모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강습임무 시에는 CH-53 시스텔리온 42기를 탑재하고, 와스프급 상륙함 내부에는 600여 개의 병상과 수술실, 치과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적 목적 외에도 재난지역 구조활동에도 적극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일본 이즈모급 호위함 - 기준 배수량 19,500톤 / 만재배수량 27,000톤 / 길이 248m ]

이즈모급은 일본에서 건조한 최대 크기의 함정입니다.

1139억 엔 한화로 따지면 대략 1조 1500억 원의 건조비용이 들어갔고, 2015년 3월에 취역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도함의 길이가 199m 인 것과 비교하면 이즈모보다 49m 작고, 기준 배수량에서도 이즈모급이 5000톤 이상 크죠.

 

1번함 이즈모의 자매함인 2번함 '카가'함이 2017년 3월 22일 취역했습니다.

현재 해상자위대는 헬기모함을 총 4척 보유하게 되었고, 특이사항으로는 카가함은 갑판 내열재를 변경하여 1번함과 달리 F-35B를 운용할 수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키로프급 순양함 - 기준 배수량 24,000톤 / 만재 배수량 28,000톤 / 길이 252m]

키로프급 순양함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미국의 원자력 순양함에 영향을 받아서 건조되었습니다.

원자력 순양함이기때문에 적 함대방공망을 모두 뚫어버릴 수 있는 20발의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군함 중 화력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죠.

 

일각에서는 미 항모전단을 홀로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할 만큼 무장력이 엄청납니다.

사정거리 500km의 마하 2.5, 탄두중량 750kg의 7톤 무게의 대함미사일은 항공모함까지 격침이 가능할 정도로 화력이 강력합니다. 

그리고 20발의 초음속 대함미사일도 있고 자체 방공 능력이 매우 뛰어난데 S-300F 대공미사일 96발과 9M311 대공미사일 216기 등으로 무장했습니다.

 

 

[미국 아메리카급 상륙함 - 만재 배수량 45,700톤 / 길이 257.3m]

미국의 와스프급의 마지막 8번함인 매킨 아일랜드 상륙함의 후속함입니다.

만재 배수량이 8% 늘어나 이름만 강습상륙함이고 규모로만 보면 중형 항공모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척 당 건조비용은 34억 달러고 한화로 대략 3조 8100억 원이고, 현재 1번함이 운용 중에 있으며,

2번함은 최근에 진수되어 2020년 이후에 취역할 예정에 있다고 합니다.

 

함재기로는 MV-22 틸트로터키 12대, AH-1Z 공격용 헬기 대, F-35B 전폭기 10대, CH-53K 수송용 헬기 4대, MH-60K 다목적 헬기 2대 등 총 36대를  탑재할 수 있습니다. 통상임무 시 F-35B 전폭기 10대, MV-22 틸트로터기 12대, CH-53K 수송용 헬리콥터 4대, AH-1W 공격용 헬리콥터 8대, MH-60 다목적 헬리콥터 4대를 탑재 후 임무를 수행하구요.

 

그리고 해역 통제 임무 시에는 F-35B 전폭기 20대, MH-60 다목적 헬기콥터 6대를 탑재 후 임무를 수행하며, 공격임무 시에는 F-35B 전폭기 22대를 탑재합니다.  공격 개시 초반에 가장 먼저 투입되고, 적 항공기와 지상 주요 거점들을 일시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막강한 화력을 가진 상륙함입니다. 

 

국가의 해군력을 크게 상승시키는 군함 2부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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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6.25전쟁을 묘사할 때 반드시 나오는 장면이 바로 북한군의 전차입니다.
그래서인지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도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으로 서울을 불과 3일 만에 쉽게 내주고 낙동강까지 일방적으로 패퇴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거에요.

 


전쟁 발발 직전 남북한 전력 비교 할때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전차입니다.  국군은 단 1대의 전차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장병들은 전차를 본 적도 없었고,  특별한 대(對)전차 저지를 위한 장비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자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군은 T-34전차를 242대나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T-34전차는 소련제 입니다.
알려진 대로 전쟁 초기 북한군이 공격 선봉에 내세운 전차는 엄청난 성과를 냈었고, 별다른 방어수단이 없었던 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죠. 반대로 북한군의 전쟁 초기 주도권을 잡게 해줬던 주력 병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군은 전쟁 초기부터 휴전 후 상당기간까지 북한의 기갑 세력에 대해서 상당한 트라우마를 갖게되었죠.

개전초기 전차를 가지고 돌진하는 부대와 변변한 대전차 무기도 보유하지 못한 부대와의 대결은 너무 결과가 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전개로 6.25전쟁 초기에 국군은 일방적으로 밀렸으며, 노래 가사같이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진지를 유린하고 달려오는 북한군의 전차에 힘없이 쓰러졌지만, 수많은 선배들이 불나방같이 육탄 돌격을 했었죠. 

 


그런데 과연?

북한군이 운용하였던 전차는 대나무를 한 번에 가르던 날카로운 보검이었을까요? 
그리고 1970년대 반공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우리 선배들은 온몸에 다이너마이트를 치렁치렁 감고, 전차의 정면으로 용감하게 뛰어들기만 하였을까요?

 


전쟁 개전 초기, 패배를 단지 북한군 전차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지만 1950년 6월 기준으로 기갑 전력 외에도 국군은 북한군에 비해 모든 전력에서 열세였습니다. 우선 병력만 해도 북한군의 반정도 수준이었고, 훈련 수준만 비교해봐도 북한군 대부분은 사단 급 훈련까지 마쳤지만,

국군은 제대로 완편 된 부대도 많지 않았고, 대대 급 훈련 정도만 하였던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포병 전력이나 항공 전력 역시 북한군에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당시 국군이 가지고 있었던 중화기 M3 곡사포만 해도 부족한 91문이었지만, 북한군은 사단별로 포병연대를 완편하였을 만큼 질과 양에서 국군을 압도했습니다. 우리는 한 기도 없는 전투기를 북한군은 200여 기나 보유하고 있었죠.
일반적으로 공경하는 입장이 방어하는 입장에 비해 3 : 1 정도 전력 차가 있을 때 공격을 개시한다고 합니다.

 


계량화한 전쟁 직전의 전력 격차는 대략 5배 정도로 북한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했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군이 설령 전차 부대가 없었어도 도발을 충분히 감행할 만큼 남북 간의 전력 차가 크게 벌어져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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